불교 이야기

苦의 원인과 12연기설

hognmor 2022. 1. 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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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의 원인과 12연기설

 

12연기설에 따르면 과거에 어리석은 마음[無明]으로 인해 행(行)을 지어 그 행위의 업력에 의해서 이번 생으로 윤회하여 몸을 받아 태어난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무명과 행으로 인해 이번 생에 몸을 받았다면, 몸을 받은 뒤에는 업력으로 인하여 식이 생긴다. 부파불교의 업감연기설(자기가 지은 업력을 근본원인으로 하고 일체만유가 연이 되어서 과를 받는다는 주장)에 의하면 과거세의 무명과 행으로 인해 이번 생에 몸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의 행에 의해 우리의 몸이 형성되면 그곳에 식(識)이 발생한다. 이것은 식별, 인식이라고 해석된다. 몸이 형성되자 우리는 무의식적인 습(習)으로 그곳에 ‘나다’ 하는 아상(我相)을 짓고, 따라서 ‘나다’라는 생각으로 인해 거기에 분별하는 인식작용이 발생한다. 부파불교의 업감연기설에서는 인간이 이생에서 몸을 받자마자 그 업력으로 인하여 몸에 여섯 가지 기관[六根]이 생기고 그 기관에서 제각각의 식별[六識]을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여섯 가지 식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러한 여섯 가지 식이 성립하기 위해서 우리 몸에서 인식할 수 있는 감각기관과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며 이것을 표현한 것이 십이연기의 네 번째인 명색[육경]과 다섯 번째의 육입[육근]이다. 명색이란 우리의 주관적인 감각기관인 육근의 대상으로 육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육경 중 정신적인 것이라 함은 여섯 번째 의식의 대상인 법경(法境)을 말하는데, 의식의 대상인 정신적인 생각 등을 말한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명색을 오온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즉 색은 물질적인 것이고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것으로 본다. 육입은 육처(六處)라고도 하며, 여섯 가지 인간의 주관적 감각기관을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을 십팔계(육근, 육경, 육식)라 할 앞의 식, 명색, 육입은 바로 이 십팔계(十八界)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구성요소인 십팔계는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라고 할 것 없이 인간의 주관인 감관[육근=육입]과 그 감관에 대응하는 대상[육경=명색],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만날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인식작용[식]을 나타내고 있다. 촉은 여섯 감각기관인 육근과 그 대상인 육경이 만나는 것이지만 단순히 육입이 육경과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접촉으로 인해 육식이 일어나는 것까지를 말한다. 다시 말해 식, 명색, 육입이 서로 화합하는 작용을 바로 촉이라고 한다.

 

부파불교의 삼세양중업감연기를 알아본다. 앞에서 무명과 행이 과거세의 두 가지 원인이 되었음을 말했는데, 그러면 그 과거세의 두 가지 인의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세의 결과로 식, 명색, 육입, 촉이 그것이다. 과거세에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해 업[行]을 지었고, 그로 인해 현세에 인간의 감각기관이 생기고[六入], 그에 따른 대상이 생기며[名色], 그 두 가지가 만나 인식작용[識]이 일어나게 된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는 작용을 촉(觸)이라고 한다. 이렇듯 네 가지는 현재세의 결과라고 한다. 이를 시간적으로 따져 본다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식(識)이란 처음으로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가는 단계이며, 명색(名色)은 아이가 어머니 태 속에 있을 때 심신(心身)이 점차로 발육하기는 해도 아직 오관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와 같은 것이고, 육입(六入)은 심신이 완전해져서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 의 여섯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촉(觸)은 어린 아기가 출생한 후 외계에 접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후 두세 살까지는 육근으로 육경과 접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현생을 살아가며, 죽기 전까지는 항상 식, 명색, 육입, 촉의 작용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므로 위에서의 동시적이란 설명과 함께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애(愛)란 앞서 수(受)에서의 좋고 싫다는 느낌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 좋은 것을 취하려 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즐거움의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려는 욕심이므로 욕망, 갈애(渴愛)라고도 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심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증오심도 애(愛)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애(愛)를 번뇌 중에서 가장 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수행에도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꼽는다. 애(愛)를 인연으로 하여 취(取)가 일어나는데 이는 취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욕망에 의해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취착(取着)이라고 하여 취하여 집착하는 올바르지 못한 집착을 말한다. 앞의 욕망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심을 말한다. 즉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감각 작용이다. 여기에서는 아상(我相)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유(有)라는 말은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되는 것으로써 업(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집착하여 취하려 하므로 그에 따른 행위로 업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지분에서 나온 행(行)도 업이라고 했으므로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행은 그 원인이 무명이므로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기는 보다 근본적이고 소극적인 업이라고 한다면, 이 유(有)는 애(愛)와 취(取)를 조건으로 하여 생기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행은 태초에 처음 무명으로 인하여 한 생각이 일으킨 근본적인 업(業)이며, 유(有)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편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를 업이라고 했으니 그 업력에 의하여 생(生)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인생의 괴로움임을 여실히 보시고 그 원인을 살펴보셨다. 그 결과 궁극의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無明)임을 아셨다. 그러므로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바로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태초에 근본무명으로 인해 한 생각 잘못 일으킨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근본을 끊으려면 밝은 지혜를 닦아야 한다. 그러나 무명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모두가 생, 로, 병, 사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십이연기의 지분 중에서 괴로움의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요, 오직 바로 지금의 현실이기에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올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십이연기의 각 지분 중 생, 로, 병, 사를 초래한 세 가지 원인이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에게 직접적인 괴로움의 원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애(愛), 취(取), 유(有)이다. 결국, 괴로움의 원인은 애욕과 애욕으로 인해 그 대상에 집착하여 취하려는 취착심, 그리고 그러한 애욕과 취착으로 인한 잘못된 행위[有]가 바로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煩惱)라고 한다. 번뇌는 결국 집착하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 사견(邪見)으로 인한 어리석은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탐(貪), 진(瞋), 치(癡)이다. 이러한 번뇌의 근본 원인은 무명에 있는 것임을 올바로 일러주는 교설이 바로 십이연기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