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경전에서의 십이연기(十二緣起)
석가모니 부처님은 오랜 구도의 여정으로 드디어 가야의 삡빨라 나무 아래에서 성도하여 우주와 인생의 근본 이치와 도리를 깨달은 존재가 되었다. 이때부터 가야는 '깨달음의 가야’라는 의미의 보드가야(Bodhgaya)로, 삡빨라 나무는 ’깨달음의 나무’라는 보리수(菩提樹)로, 그리고 석가모니가 앉았던 자리는 ‘금강과 같이 견고하고 부서지지 않는 보물의 자리’라는 의미의 금강보좌(金剛寶座)로 이름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부처님의 감동적인 성도(聖道) 사건은 12연기의 가르침으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초기경전의 하나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깨달음을 여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세존은 우루벨라 마을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아래에 앉아 계셨다. 이때는 처음으로 최상의 깨달음(paṭhamābhisambuddho)을 성취하신 후로서 세존은 7일 동안 한 자세로만 앉은 채 해탈의 즐거움(vimuttisukha)에 계셨다. 7일이 지나자 세존은 삼매(samādhi)에서 나오시어 밤 동안에 다음과 같은 순서[順觀, anuloma]로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뚜렷이 관찰하셨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날 때 저것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어리석음(無明, avijjā)으로부터 행(行, sankhārā)이 있고, 행으로부터 식(識, viññāṇa)이 있고, 식으로부터 명색(名色, nāmarūpa)이 있고, 명색으로부터 육입처(六入處, saḷāyatana)가 있고, 육입처로부터 촉(觸, phassa)이 있고, 촉으로부터 수(受,vedanā)가 있고, 수로부터 애(愛, taṇhā)가 있고, 애로부터 취(取, upādāna)가 있고, 취로부터 유(有, bhava)가 있고, 유로부터 생(生, jāti)이 있고, 생으로부터 늙음과 죽음(老死, jarāmaraṇa)이 생긴다. 이러한 괴로움의 모임은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때에 세존은 그러한 것을 다음과 같은 감흥으로 표현하였다.
지극한 마음으로 선정을 닦는 수행자에게 모든 법이 드러날 때(pātubhavanti) 모든 의혹은 사라져 버린다. 모든 법에는 그 원인(hetu, 因)이 있음을 환히 아는 까닭이다.
이 경구는 초기경전 가운데에서도 일찍이 성립되었다는 우다나(Udāna)의 시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자 불교권에서 번역되지 못하고 최근에야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성도 사건과 관련한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보통 한역 경전에서는 순관과 역관만 시설되는데 비해 순역관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다른 경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이 순관(順觀)과 역관(逆觀) 그리고 순역관(順逆觀) 다음에 각각 나타난다.
즉 “지극한 마음으로 선정을 닦는 수행자에게 모든 법이 드러날 때 모든 의혹은 버린다. 모든 법에는 그 원인이 있음을 환히 아는 까닭이다” 등이 그것이다. 셋째, 연기법의 압축적인 정의와 관련해 12연기의 순관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에 해당되고, 역관은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此滅故彼滅]에 해당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2. 12가지 항목의 설명
이처럼 12연기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를 말하며 관찰하는 방법에는 순관과 역관 그리고 순역관이 있다. 순관이란 고의 일어나는 유전(流轉) 연기의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괴로움으로 귀결되는 중생의 현실과 생존의 상태를 여실하게 보는 것이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고, 행(行)을 조건으로 해서 식(識)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名色)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 사가 있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마지막 항목인 ‘노사(老死)’에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생략되었지만 한 마디 압축적인 말은 환멸문인 사성제에서‘고(苦)’로 나타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중생이 무명과 욕망 등을 조건으로 고통받으며 생사를 되풀이[流轉]하는 구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12연기의 순관을 중심으로 각각의 항목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무명(無明, avijjā) : 글자 그대로 명(明)이 없다는 말로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말한다. 명은 반야지혜(般若智慧)를 의미한다. 특히 경전에서 사성제(四聖諦)나 오온(五蘊)에 대한 무지로 설명된다. 따라서 사성제와 오온 등의 진리에 무지한 중생을 무명장야(無明長夜)에 사는 존재로 설명된다.
② 행(行, saṅkhara) : 행은 무명을 조건으로 일어나는데 몸 ․ 말 ․ 뜻으로 짓는 세 가지 행[三行]이 그것이며 삼업(三業)과 같은 말이다. 무명으로 행이 있다는 것은 진리의 무지 상태에서 행 또는 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무명에 의한 활동은 항상 잠재적인 힘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에서 행과 업은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진리 ․ 진여 ․ 진실 ․ 실상이 어두움에 가려져 조작과 왜곡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행위를 말한다.
③ 식(識, viññāṅa) : 행을 조건으로 식이 있으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6식이 있다. 6식이 일어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인 행이 있기 때 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과거의 행이 바탕되어 있지 않으면 현재의 인식작용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④ 명색(名色, nāmarūpa) :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명이란 원래 색이 아닌 모든 것을 그리고 색이란 물질적인 일반을 의미한다. 즉 인식이 성립하려면 그 대상인 명색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⑤ 육입처(六入處, saḷāyatana) : 명색을 조건으로 6입처가 있는데 6입처란 눈[眼], 귀 [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의 6근(根)에 기초한 식의 영역을 말한다. 좀 더 풀이해서 말하면 식의 대상인 명색과 함께 식의 영역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⑥ 촉(觸, phassa) : 6입을 조건으로 촉이 있는데 촉이란 경전에서 삼사화합촉(三事 和合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근(根)․경(境)․식(識)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촉에도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 6촉(六觸)이 있다.
⑦ 수(受, vedanā) : 촉을 조건으로 해서 수가 있는데 수란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 운 느낌[苦受],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不苦不樂受]과 같은 기본 느낌[三受]이 설명된다.
⑧ 애(愛, taṇhā) : 수를 조건으로 해서 애가 있는데 애란 갈애(渴愛)로서 목마름과 같은 근원적인 욕망을 말한다. 앞의 수를 조건으로 수가 강화된 상태로 세 가지 기본 욕망[三愛]이 있는데 욕애(欲愛)와 유애(有愛) 그리고 무유애(無有愛)이다. 감각적 욕망과 생존지속욕망 그리고 생존파괴욕망으로 달리 이름할 수 있다.
⑨ 취(取, upādāna) :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가 있는데 취는 집착(執着)을 뜻하는 말 로서 애가 더욱 강화된 단계로서 달리 강렬해진 갈애라 할 수 있다.
⑩ 유(有, bhava) : 취를 조건으로 유가 있는데 유(有)란 존재를 말하는데 욕유(欲 有)․ 색유(色有) 그리고 무색유(無色有)와 같은 삼유(三有)로 설명된다.
⑪ 생(生, jāti) : 유를 조건으로 생이 있다는 것은 존재 자체의 태어남을 의미한다.
⑫ 노사(老死, jarā-maraṇa) : 생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등 여러 가지 고가 있는 것으 로 모든 인간의 고를 대표하는 말로 쓰였다. 즉 이로서 갖가지의 고로서 근심[憂], 비애[悲], 고통[苦], 번뇌[愁], 번민[惱] 등으로 윤회하는 것이다.
3. 12연기의 궁극적 의미
장아함의 『대연방편경(大緣方便經)』에 의하면 부처님을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모셨던 아난존자가 자신의 생각으로는 12연기가 마치 눈앞에 있는 것과 같이 쉬운데 무엇이 깊다는 것인지 부처님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에게 “12인연은 보기도 알기도 어렵다. 모든 하늘 악마 범천 사문 바라문으로서 아직 12인연을 보지 못한 자가 만일 사량하고 관찰하여 그 뜻을 분별하려고 한다면 곧 정신이 아득하여 능히 보는 자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12연기가 대단히 심심미묘(甚深微妙)한 가르침임을 말씀하여 주신다. 때문에 불교교리사에 있어 과거는 물론 현대 학자에 이르기까지 12연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2연기는 부처님이 해결하고자 했던 중생의 삶을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돌릴 수 있는 가르침이다. 모든 고통을 종식시킬 수 있는 법으로 이는 부처님이 출가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가장 중대한 문제이기도 했지만 부처님이 출현하기 이전이나 이후인 현재의 우리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로 일대사의 큰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진리일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들의 고를 밝히고 그러한 고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설하는 것 이외는 아님을 강조하고 계신다.
조준호/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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