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국회를 향해 막말 수준의 발언을 쏟아낸 박 대통령. 참 이상하다. 툭하면 장관들이나 수석비서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런다. 유가족들에게 할 말은 유가족에게, 국민에게 할 말이 있으면 국민에게 직접 하면 된다. 국회를 향해 할 얘기가 있으면 여야 대표를 부르면 그만인데 왜 상관없는 장관과 비서들 불러놓고 저러는 걸까.
유족과 국회 비난한 대통령, 발언 전문 보니 심각해
만만해서 그럴 거다. 자신의 얘기라면 토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경청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반론이나 질문이 나올 수 없다. 일사불란한 것을 좋아하는 박 대통령 성격에 딱 맞는 자리가 ‘충복들이 모인 경청장소’일 것이다.
지난 16일 또 그런 일이 벌어졌다. 국무회의석상에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발언을 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해도 꿈쩍하지 않더니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하지만 발언 내용은 국민들의 사태 인식과 크게 달랐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이 이미 드러났고, 유족들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었으며, 사실규명도 잘 진행돼 많은 부분이 해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도 잘 진행되고 있는데 왜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고 하느냐, 불순한 정치세력이 순수한 유가족들을 부추겨 여야 합의안을 거부하도록 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나서 결단하라고 하는데 이는 삼권분립과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로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온국민이 하나? ‘불통 대통령’의 야무진 착각
또 지난 여야 2차합의안이 “여당의 권한이 없는 마지막 결단”이라며 향후 협상의 여지를 단호하게 차단했다. 막말도 나왔다. “국회의원 세비는 국민들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라며 “(국회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에게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따위로 하려거든 국회의원들 모두 배지 떼놓고 나가라는 얘기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고용인인가.
놀랍다. 그래서 그날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 전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심각하다. 용어부터 문제다. ‘국민’ ‘정치’ ‘대통령’ ‘국회’ ‘민주주의’ ‘삼권분립’ ‘민생’ ‘증세’ 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보편성과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게 확인된다.
먼저 ‘국민’. “온국민이 하나가 돼서”라고 말하며 국회를 향해 “국민을 의식하지 않고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어떻게 온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건가. 고문과 폭력으로 잔혹한 독재를 했던 아버지 박정희도 온국민을 하나로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를 나무란다. 자신은 국민을 잘 의식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불통 대통령’이라는 지적을 들어보지도 못했나. 착각이 참 야무지다.

‘7시간 의혹’ 자초한 건 대통령 자신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며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고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위상에 대한 인식이 편향적이다. 국민의 대표일 수 있지만 ‘국민의 공복’이기도 하다. ‘공복’이기에 국민은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고 때로는 욕도 할 수 있다. 이게 민주주의다. 설령 ‘모독’이라고 치자. 박근혜라는 사람을 모독한 것을 두고 왜 국민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하는 건가.
‘7시간 의혹’ 때문에 심기가 크게 불편한가 보다. 우습다. 풍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왜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소상히 밝히지 않는 건가. 의혹을 자초한 이가 자신이면서 의혹을 제기한 이들을 비난한다.
7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기에, 대체 어떤 상황이었기에 서면·유선 보고만 받아야 했단 말인가. 의혹을 해소할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대체 누구를 나무라는 건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도 엉망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여야 대치가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 “의회민주주의 근간의 훼손”이라고 말했다. 중고등학생들도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 거다. 때로는 여야가 극한의 대치를 하며 싸울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국회’ ‘국민’ ‘대통령’에 대한 인식도 엉망
민주국가에서 갈등 없이 잘 화합하는 여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의 반대를 잘 설득해 나가는 것도 대통령의 역량이다. 걸맞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제 입으로 실토한 셈이다.
국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속내도 드러냈다. “국회가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정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된다”고 주장했다. ‘뒷받침’이란다. 단순 말실수일까? 아닐 것이다. 평소 국회를 어떻게 여겨왔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입법부의 역할이 행정부를 ‘뒷받침’해 주는 거라니. 거수기 역할이나 하는 곳이 국회라고 생각하나 보다.

설득은 없고 귀는 닫혔다. 담뱃값 인상하면 “청소년들과 저소득층에서 (금연) 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하며 국민 건강을 위한 거라고 강변했다. 청소년과 저소득층은 사회적 약자다. 약자를 보호하는 방법이 값 크게 올려 구매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거란 말인가. ‘담배조차 못 사는 신세’로 만들어 건강 챙겨주겠다는 발상이 잔인하다. ‘서민증세’는 안 된다는 국민의 외침을 들을 귀가 그에게는 없다.
삼권 위에 있는 자가 삼권분립 외치며 특별법 막다니
이런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외친다. 지금까지 침몰 원인과 ‘골든타임 구조0명’에 대해 밝혀진 게 하나도 없으니 앞으로도 이럴 거라며 수사권과 기소권 있는 특별법 주장하자 ‘삼권분립’이라는 방패를 들고 나와 그 뒤에 웅크린 ‘최종책임자’. 웃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삼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박 대통령이 삼권 위에 있지 않다고 보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삼권 위에 군림하면서 삼권분립을 외치는 모순. 이건 횡포다. 이런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국민에게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로 돌려줘라”고 목청을 높였다. 304명이 희생됐는데도 진상규명을 회피하는 대통령이야 말로 당장 그 의무와 연봉을 국민에게 반납해야 할 사람이다.
특별법을 막고 있는 이가 누군지 분명해졌다. 여당을 틀어쥐고 ‘수사권-기소권’을 줄 수 없다며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대통령이 바로 그다. 2014년 현실정치에 존재하지도 않는 삼권분립을 외치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