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삽시다

교육의 주체는 인간입니다 - 무터킨더 -

hognmor 2009. 5. 12. 00:05

이 글은 한겨레 제 블로그( http://blog.hani.co.kr/yytpss/20498)의 '일제고사 반대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란  글에 덧글을 달아주신 한정호님( http://blog.hani.co.kr/medicine/21545 )에게 쓴 답글입니다. 모두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일 것 같아 여기에 올립니다.

제 글에 대한 님의 반론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추천해 주신 세편의 글들도 읽어보았고요. 쥐도 도망갈 곳을 내주며 몰아붙이라고 한정호님은 항상 친절히 예문까지 추천해 주시니 매너가 아주 좋은 논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는 칭찬!^^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교사의 무능과 매너리즘, 아주 뼈저리게 경험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지금까지 전혀 변화 없이 그대로군요. 사교육열기만 점점 더 거세질 뿐 이를 따라가지도 따라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 학교와 그 학교에 둥지를 튼 철밥통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억울한 마음, 한국에서 교육받은 제게도 충분히 전해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침묵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생각을 대변하신 것 같아 마침 반갑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님이 추천해주신 이기정 선생님의 글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하고 머리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충분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질서정연한 논리와 세련된 전개로 읽는 이의 마음을 확 잡아끌기에 충분한 글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먼 곳에 있는 저도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이미 잘 알려진 분이죠.

그런데 두 편의 글을 읽는 동안 내내 내가 기다리던 한 마디는 없었습니다. ‘입시개조론, 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와 ‘교원평가, 수용이냐 투쟁이냐’란 제하의 이기정 선생님의 글에는 진정한 교육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한 마디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과 그것은 다른 종류의 주제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굳이 드러나게 묘사하지 않아도 어떤 글이라 할지라도 필자의 사람냄새가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가 과연 공부 못하는 학생을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그분은 서울사대를 나왔고 이유야 어쨌든 사교육의 진원지인 학원가를 전전하다 학교에 안착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에서는 성적지상주의자의 엘리트의식과 교육을 수요와 공급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상업주의적 지식사업 정도로 치부하는 논리가 보입니다.

그 일예로 이기정 선생님의 글에서 한 부분 발췌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학교에서 가장 고통 받는 아이들은 최고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자신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수업을 들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감당하고 도전해 볼 만한 시험을 볼 권리가 있는 것이다.”라고 수준별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 아이들이 가장 학교에서 고통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그것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성적을 올리고 싶어 죽겠는데 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학교 공부보다는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축구에 더 관심 있을 수도 있고, 가수가 되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데 더 관심 있는 아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학교를 나오는 것은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어른들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흉내만 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또 수업시간에 떠들고 노는 일이 흥미 없는 책과 씨름하는 것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꿈을 키울 수 있는 열려있는 학교지 자신을 남들과 똑 같이 우등생으로 만들어 주는 학교가 아닙니다.

그가 생각하는 고통은 공부를 잘해본 사람, 공부에 의해서 행과 불행이 엇갈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일 뿐입니다. 그는 분명 학창시절에 꼴찌를 경험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꼴찌까지는 갈 것도 없고 상위권을 벗어나 본 적도 없겠죠. 그건 한정호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일제고사와 같은 성적대로 줄 세우기식 제도나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꼴지를 위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지요.

우리나라 교육의 큰 틀이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나 이를 시행하는 사람이나 이를 감독 감시하는 사람이나 모두 엘리트 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말로는 그럴 듯하게 인간은 평등하다는 등 존엄하다는 등 번지르르하게 떠들겠지만 마음속에는 ‘꼴지가 도대체 왜 살까?’ 의문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정 그들이 꼴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이대목에서 독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독일은 그런 면에서 다릅니다. 정치인이나 법조인이나 학자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 세력들이 모두가 학교의 우등생들은 아니거든요. 그 중에는 학교에서 몇 번이나 낙제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도 있고, 운동만 하다가 부상으로 할 수 없이 공부해서 박사를 하고 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초등학교에서 꼴찌만 하다가 김나지움(인문계학교)도 못가고 직업학교 갔다가 나중에 죽자고 공부해서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공부가 좋아서 일찍부터 우등생의 길만 걸었던 무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육을 논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경험했기 때문에 꼴지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거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없고 독일엔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낼 수 있는 결과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것은 반대의 길로 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 혼자 양보했다간 나만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없던 제도까지 만들어 갈 때까지 가봐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이기정 선생님이 말한 교원평가제도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학생들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더 불편 하겠는가, 아니면 나이가 지긋한 교장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더 불편하겠는가. 보통의 교사라면 교장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조금은 덜 불편할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감정이다.”라고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이유를 나열한 것은 좀 억지스럽고 우습네요.

교원평가는 학생과 교사를 거래의 원리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사견이지만, 왜 교사의 자녀들이 잘되는 경우는 아주 잘되기도 하지만 개망나니로 크는 아이들이 많은지 아세요? 거래에 익숙해지며 자라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가르치는 선생님은 우리 엄마와 혹은 우리 아빠와 같은 교사이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를 함부로 어쩌겠나.’라는 노력보다는 계산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버리는 거지요. 그러면 그 아이는 이미 정상적인 교육이 틀려버린 것입니다. 선생님 또한 ‘저 아이를 함부로 대했다간 동료 간에 껄끄러워 질 수도 있겠다.’는 찜찜한 생각으로 더럽고 치사해도 눈 한 번 질끈 감고 대충 넘어가려는 보신주의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학생들에 의한 교원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교실에 만연할 것입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들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나 목사 같은 사람이 자식을 겸손하게(여기서 겸손이란 진짜 겸손을 말합니다. 겸손한척 하는 것이 아니라.)제대로 잘 키운 사람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분명 그는 자식을 잘 가르치기 위해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이 노력했을 것 같으니까요.

저는 교육에는 관심이 많지만 전교조도 무엇도 추앙하는 부류는 아닙니다. 하지만 독일 교육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자꾸만 그 쪽으로 비슷하게 가는 가 봅니다. 저는 몰라도 읽는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그렇다면 아마 전교조가 내세우는 이념은 제가 말하는 교육과 얼추 맞아 떨어지겠네요.^^

전교조 이야기는 할 것도 없이, 한정호님과 이기정 선생님 같은 분은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견해와는 바라보는 곳이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실 토론을 원만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쪽은 너무 실무와 성과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 같고, 한 쪽은 너무 이상만을 앞세우는 것 같고…….

한정호님 말처럼 지금 당장 과외와 학원을 때려치우고 경쟁 없는 학교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야 말로 학생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하는 꼴 밖에는 안 됩니다.’란 님의 말씀 백번 옳습니다. 또 누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없던 제도까지 만들어 여기서 더 경쟁을 조장하는 일은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