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제에서 잡귀에 대한 제사
마을제에서 잡귀(雜鬼)에 대한 제사
잡귀잡신은 정격신(定格神)의 반대 개념이다. 신의 명칭과 근원 또는 직능이 분명한 정격신과 달리 신계(神界)에 존재는 하지만 위계가 낮아 제의의 중심에 초청되지 않거나 인간에게 좋지 않은 행위를 할 수 있는 위협적인 대상으로 관념된다. 이 때문에 정격신에게는 기능에 따른 소원을 구한다면 잡귀잡신에게는 위로와 달래기를 통해 동네의 안녕을 구하게 된다. 잡귀잡신은 수많은 하위 신격을 아울러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신격이 속하게 된다. 유교식 제사로 치러지는 마을제에서는 다소 모호하게 잡귀잡신으로 통칭되지만 신의 세계가 다양한 무속식 마을 제에서는 각각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잡귀잡신은 부정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마을제에서 본격적인 제의가 있기 전에 잡귀의 범접을 금하는 금줄치기와 황토 뿌리기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본격적인 제의 이전에는 잡귀잡신이 부정적인 존재이지만 마을제에서는 축귀 의식을 적극적으로 갖추고 있기보다 이들을 제어할 능력이 있는 주신을 잘 대접하고, 제의가 끝나는 말미에 이들을 달래서 해코지를 면하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마을 주신에게 정성을 들인 뒤에는 잡귀잡신이 받아먹고 가라는 의미로 차려진 제물을 조금씩 추려서 주위에 뿌려 주는 행위인 고수레, 헌식 등이 행해진다.
민간신앙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도 잡귀잡신에 대한 제의를 행하였다. 이른바 조선시대의 제사를 관장하는 봉상시(奉常寺)에 신실을 두고 동쪽에 여섯, 서쪽에 아홉의 잡귀들을 봉안하였다. 또 7월 15일과 10월 15일에 여단(厲壇)을 두어 이들 존재에 대한 제의를 시행하였다. 이것이 ‘여제(厲祭)’이다. 이들 존재에 대한 제의를 통해 질병과 변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다. 1929년 간행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귀신』 가운데 여귀(厲鬼)에 대한 기록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봉상시(奉常寺)에 신실을 만들어 놓고 제신을 봉안하는데 그중에는 무사의 귀신을 2좌 15위에 나누어 모시고 있다. 즉 다음과 같다.
동좌육위(東坐六位) : 조병인사자(遭兵刃死者), 우수화도적사자(遇水火盜賊死者), 피인취재물핍사자(被人取財物逼死者), 피인강탈처첩사자(被人强奪妻妾死者), 조병화부굴사자(遭兵禍負屈死者), 인천재질역사자(人天災疾疫死者)
서좌구위(西坐九位) : 위맹수독충소해사자(爲猛獸毒蟲所害死者), 전투사자(戰鬪死者), 피장옥압사자(被墻屋壓死者), 동뇌사자(凍餒死者), 인위급자액사자(因危急自縊死者), 산난사자(産難死者), 진사자(震死者), 몰이무후사자(歿而無後死者), 추사자(墜死者)
그리고 이 귀신을 제사 지내는 것은 청명(淸明)과 7월 15일과 10월 15일 세 차례 행하고, 그 제사는 북쪽에 있는 여단(厲壇)에 성황일위(城隍一位)와 무사귀신(無祀鬼神) 15위를 경성 부윤이 주재자가 되고, 예조(禮曹)에서 사관(祀官)을 보내어 거행하였다. 이렇게 정중 하게 제사를 지낸 까닭은 사당이 없는 귀신, 즉 여귀는 분한(憤恨)의 기가 응집되어 질병이 생기게 하고, 화기 (和氣)를 상하게 하며 변괴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조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