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반대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 무터킨더 -
한국은 또 다시 일제고사 스캔들에 휩싸였다. 누가 반대하고 누가 찬성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불을 보듯 뻔히 보이는 현실 앞에서 그래도 깃대를 올린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지지의 표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의외로 일제고사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부하고 결과를 알아보는 일인데 뭐가 잘못되었냐?’는 것이 사실 생각해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또 능력 없는 선생님 가려낸다는데 반대할 학부모는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바로 알고 있다면 누구라도 무조건 찬성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째는 일제고사는 지난 시험에서 그 폐해를 확인할 수 있었듯 단순히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워 경쟁을 조장한다는 것 이 상의 부조리를 낳을 수 있다. 교육 자체는 국가라는 큰 카테고리에 의해, 위정자의 권력으로 좌지우지되게 만들어 놓고, 그 책임은 학교에 교사에게 학생에게 넘겨주게 됨으로 해서 학생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처야 하며 교사는 교육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그 아이들을 쥐어짜야 하며, 교장은 자신의 행정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교사와 학생을 충분히 이용해야만 한다.
이미 이번 일제고사에서 모 학교는 상위권에 들면 얼마를 준다는 등, 상금까지 내걸고 경쟁을 부추기는, 막장교육의 행태를 보여주는 지경에까지 와 있다. 시험지를 나누어 줄 때마다 못하는 학생들이 상처받을까 잘 한 아이들에게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지 않는 독일 선생님들의 신중함이 다시 한 번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결국 그 사이에서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과외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이고 무한정의 재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은 학부모들이다. 실제적인 피해자는 대통령도 장관도 교장도 교사도 아닌 학부모와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꿈을 꿀 여유조차 잃어버린 힘없는 아이들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한 대통령의 임기 안에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단기적 발상이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에 아스팔트를 놓아주는 격이 될 것이다.
둘째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새삼스럽게 깨우치게 되었고 알게 되었다. 우리는 부모세대나 아이들이나 기간을 정해두고 한꺼번에 몰아붙이듯 보는 시험에 익숙해져있어 그 심각성을 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시험시간 동안 요하는 높은 집중력과 정신적 자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시험의 스트레스를 줄여 줄 수 있을까에 골몰한다.
독일학교는 하루에 한 과목 이상의 시험을 볼 수 없게 하고, 일주에 두 과목이상을 넘지 않게 한다. 이것은 아비투어(수능시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비투어는 하루에 뚝딱 끝내버리는 시험이 아니라 몇 주간에 걸쳐 충분히 휴식하고 준비하며 치루는 능력평가다. 오랜 세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아이들에게 그 이상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내 기억에도 학교 때 시험 한 번 보고 나면 그날은 머리가 텅 비어 멍해지면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하루 종일 제 색을 찾기 어려웠다.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학생과 부모들도 그렇지만, 선진국에서 유학하고 갔다는 똑똑한 교육학자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간 것인지 지금까지 변화 없는 시험방식을 보면 한심한 생각까지 든다.
그런 시험에 익숙해진 우리세대 부모들에게 ‘이정도 쯤이야, 나는 더 했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스위치만 올리면 마냥 꼭 같은 상품이 튀어나오는 뻥튀기 기계가 아니다. 하물며 기계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무리해서 돌리고 나면 손을 봐주고 기름을 쳐줘야 할 텐데, 그런 시험이 일생에 수능 한 번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번, 이제는 일제고사까지. 장시간 펜을 잡고 떨면서 긴장해야 하는 고사리 같은 손, 생각해 보면 이는 말할 수 없이 비인간 적이고 혹독한 일이다.
이제 우리 부모들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한다. 당신의 아이들과 꼭 같이 실력 있고 똑똑한 독일 아이들은 그렇게 사춘기를 공부에 저당 잡히지 않고도 좋은 학교 좋은 학과에 가서 공부할 수 있고 훌륭한 학자도 될 수 있으며 존경받는 기업가로 성장하는데 하등의 장애도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학교를 경쟁 없는 순수한 배움의 장소로 만들어 가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또 바로 약간의 경쟁에서 앞서는 학생이라는 사실을, 지금 내 아이가 잘하고 있다고 뒷전에서 조소하며 바라보기만 하는 부모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뚜렷한 목표도 없이 경쟁을 위한 경쟁에 내몰려진 교육은 결국 커다란 부패의 바위가 되어 굴러와 우리의 발등을 찍고 말 것이다. 이렇게 가는 한국 교육의 미래? 한마디로 칠흑 같이 어두울 뿐이다.
나는 물론 다 만들어 놓은 이 독일 사회에 편하게 들어와 혜택을 보고 있지만, 어려운 우리나라 교육현실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당장 내가 판단하고 움직여야 할 작은 일은 무엇인지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미래의 큰 변화를 일구어낼 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때인 것 같다.